안녕하세요. 스트로베리입니다. 오늘은 할머니가 바나나를 건넨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.
후일, 나는 할머니가 그때 주문처럼 읊던 <불쌍한 내 새끼>가 나를 지칭한 말인지, 개쌍놈을 지칭한 말인지 가끔 궁금했다. 그러나 그 답을 알 수 없었다. 할머니는 그로부터 딱 일주일 후에 작은 아들은 내가 죽였노라,는 유서를 남기고 제초제를 마셨기 때문이다. 할머니의 유서에는 저 불쌍한 것을 구박하지 말라. 네 새끼들과 똑같이 멕이고 입히면서 키우도록 하라, 만약 하나라도 소홀 하면 내가 저승에서도 네 새끼들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니 명념하라,고도 적혀 있었다.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할머니의 협박이 겁났던지 그 덕분에 나는 큰아버지 댁에서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구박도 받지 않고, 헐벗거나 굶주리지 않으면서 자랄 수 있었다.
“부인처럼 기품 있고, 아름다운 전원주택에 살고 계시네요. 내가 행복을 바라는 어떤 부인도 이런 집에서 노후를 보낸다면 좋겠어요. 내가 늘 그리워하는 분이세요.” 우리 집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 너는 말한다. “바나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지요? 네,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과일 중에서 바나나를 먹을 때, 가장 행복하답니다. 한 아이가 생각나서요. 난 20년 전에 아주 맛있는 바나나를 먹은 적 있답니다. 그 이후로 그렇게 맛있는 바나나는 먹어 본 적이 없어요.”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차를 마친 너는 차창 앞 유리만 응시하고 있다.
1. 난 차에서 내린다.
2. 너도 따라 내린다.
3. 난 너에게서 차 열쇠를 받은 뒤, 너에게 돈을 건넨다.
4. 그리고 너에게 묻는다.
“참, 내게 바나나를 준다고 하지 않으셨나요?”“ 아무 말 하지 않고, 바나나 하나를 뚝 떼어 내게 건네는 네 손길이 음식점 앞에서 내 차 열쇠를 받을 때처럼 떨린다. “고마워요. 이 바나나도 20년 전의 그 바나나처럼 아주 맛있을 것 같네요. 20년 전에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바나나를 주었던 그 아이는 아마 건실하고, 반듯하게 잘 자랐을 거예요. 난 그렇게 믿거든요. 수고했어요. 다음에 또 만나겠지요.” 바나나를 까서 입에 넣으면서 난 너에게 작별한다. 이준희. 씩씩하게 자라 주어서 고맙다. 훤칠한 청년이 되었구나. 이제 엄마 이름을 알게 되었기를..... 난 그 말을 삼키면서 주차장에서 집안으로 통하는 돌계단을 오른다. 선생님. 전 아직도 엄마의 이름을 모릅니다. 더 연세가 많아져도 랜드로바는 신지 마세요. 나는 굽 높은 하이힐이 선생님처럼 기품있게 잘 어울리는 여인을 본 적이 없다. 이름도 모르고, 본 적도 없는 우리 엄마라면 선생님처럼 굽 높은 하이힐이 잘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...... 선생님,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더 연세가 많아져도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지금처럼 우아하게 걸으면서 폼 나게 살아가세요. 절대로 발 겹지르지는 마시구요. 나도 씩씩하게 살아가겠다. 돌계단을 오르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른다. 주차장 담장 곁 살구나무에는 달빛을 받은 꽃망울이 조롱조롱 맺혀 있다. 곧 꽃이 피겠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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